정리에 대하여...
2008/11/20 09:42
때때로 행하던 그 당시보다 정리의 단계가 어렵게 느껴진다.
영화 감상 중 떠오른 단상이나 느낌들을 음미하고 곱씹어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도록 글이나 말로 이끌어내는 일.
책의 내용들을 제대로 소화/흡수시키려 요약해보는 일.
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나만의 잣대로 분석하려 애쓰는 일.
'나만의 잣대'라는 것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필터링하고 분류하고 다시 선별하는 일.
오감을 통해 지각한 것들을 머리나 가슴으로 가져가는 일. 그리고 다시 밖으로 빼내는 일.
내겐 언제나 어려운 과정들이다.
'정리'엔 버리는 작업이 수반된다.
그리고 나는 '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란 책을 서점에서 발견하고는 구매를 심각하게(?) 고려만 했던 적이 있다.
가진 게 얼마 없었을 땐 정리에 대한 공포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러가지가 얽혀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부터 말 한 마디 내어놓기도, 쥐고 있는 걸 털어버리기도 힘들어진 것 같다.
사진 찍는 일도 그렇다.
너무도 쉽게 셔터를 눌러댄다. hdd에 사진이 넘쳐나도록.
찍고 옮기고 잊는다. 메모리 한 장으로 수백 장씩 찍어재낀다. 하드디스크로 옮긴다. 잊는다.
많은 인화권을 날려먹었다.
인화할 사진을 고르는 일이 엄두가 안 날 만큼 피곤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날짜와 제목이 함께 붙어있는, 사진이 보관된 폴더들을 본다. 사진을 차례로 띄워 살핀다. 흔들린 사진도, 구도가 엉망인 사진도, '찰칵'이란 작은 소리와 함께 가뿐하게 담겨졌을 뿐인데도 한 장 한 장이 모두 의미있는 것만 같아 제대로 솎아낼 수가 없다. 베스트샷을 고르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외의 것들을 던져버리기가 힘들단 이야기다.
아무튼 10월 31일에, 수천 장의 사진을 추려 200장을 인화 주문했고 한동안 그런 내가 기특했다.


버리는게 힘든게 아니라 버리고 후회할까 두려운 편에 가까운것 같네요. 저란 사람은. 얼마전에 200장을 추려 인화를 한적이 있었죠. 남들 다 하는 사진벽 따위를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근데 그게 책상 위에 그렇게 쌓여있네요. 고르는데 날을 세우기도 했는데...:)
전 찍고 많이 지워요. 찍고나서 작은 LCD창으로 보고 지우고, 남아있는 것들을 하드로 옮기면서 지우고, 옮기고 나서 또 지우고. 그리고 나서 잊어버리고. 다시 보다가 아닌가 싶어서 지우고. 그래도 많이 남아있네요. 그렇게 그 사진들 나한테 평생 남아있겠죠. 정말 그것들은 버리면 후회할것 같으니까. 이것도 추측이에요. 그런것들 버릴 엄두도 못했으니까. :)
시린콧날/ 저도 그래요. 뭐랄까. 죽는 건 두렵지 않은데 죽을 때의 고통이나 사후 세계 같은 게 겁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건 그렇고 "남들 다 하는 사진벽" 저도 내년엔... orz
실은 잘 버리는, 미련 없이 훌훌 털어내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요. 전 정말이지 감당도 못하면서 붙들고만 있는 게 너무 많네요. 모든 걸 다 버리고도 잘 살아가는 분들이 참 많은데 말씀이에요.
저도 몇년간 모아온 애니메이션 CD 들 이백장을
얼마 전에 모두 갖다 버렸습니다
구워놓고 안 보는 게 더 많더라구요 --;
혹시 필요하게 되면 어쩌지 라고 생각할 때는 못 버렸는데
막상 그럴 일이 몇년간 없다가 또 시디 상태도 안 좋아지니
그렇게 꼭 갖고 있을 일이 없네요 --;
이제 야동 구워놓은 시디만 버리면 되는데 말이죠 --;
그것도 구워놓고 안 보기론 애니메이션 시디보다 오래 되었는데
거의 500장 가까이 되는 걸 쌓아놓고 있습니다.
이것도 털어버려야 하는데... 음음음...
뛰어난 걸 고르기가 힘들어서가 아니죠. 버리기가 힘든 것일 뿐인데... 큰 공감합니다.
택견꾼/ 저도 한창 영화를 구웠던 때가 있는데 역시나 안 보는 게 98%. 시디 상태도 체크 안 하고 있습지요. 그래도 아직 못 버리고 있어요. 댓글 적으신 거 보고 저도 대폭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생각만 했습니다;
그나저나 500장 가까이 되는 야동이라니 할 말을 잃었; 요가지도자 과정을 마치고 택견까지 즐기는(?) 분이 그러셔도 된답니까.
저는 야동 같은 건... 그때그때 보고 싹- 지워요. 으쓱;
팡주/ 작은 공감도 아니고 큰 공감이라니 먹음직스럽겠어요. 아, 곶감이 아니라 공감이구나.
감솨합니다. 공감과 칭찬은 절 춤추게 하지요.